아유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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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타야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적인 유적지로 지정된 곳으로, 1767년 버어마에 의해 침공받기 전까지 417년간 태국(당시에는 사이암)의 수도였다. 태국인들이 남쪽으로 이주한 후 우통왕(King U-Thong)에 의해 1350년 세워진 도시다.


33대에 걸친 왕들이 기거했으며, 태국인들과 서양인들간에 처음으로 접촉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이곳 아유타야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 차오프라야 강이 사이암만 에서부터 이 도시까지 배가 다닐 수 있는 항로가 됐다. 최초로 방문한 외국인들은 포르투갈 상인들과 선교사들이었다. 그들 뒤를 이어 네덜란드인들과 프랑스, 영국인들이 오게 됐다.

그러나 그들이 오고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유타야는 중국과 일본인들에게 비단, 차, 도자기를,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에게는 후추, 향료, 향나무를, 사이암인들에게는 양철, 쌀, 장뇌, 빈랑나무 열매를 특히 인도의 왕과 귀족을 위해 코끼리를 파는 주된 무역항이 됐다.

어떤 포르투갈 모험가가 아유타야를 "세계 무역의 중심지"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분명히 그곳은 당시 런던이나 파리보다 더 큰 도시였을 것이다. 400여개의 사원과 55㎞의 포장도로, 19개의 성곽을 가진 도시로서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을런지도 모른다.

그 도시의 화려한 궁정들과 사원들을 연결시켜주는 하천에서는 보석으로 장식된 배들이 마치 거대한 물뱀과 같이 네덜란드, 영국, 중국, 일본, 프랑스로부터 온 범선들 사이로 유유히 떠 다니고 있었다.

아유타야의 하류층 주민들은 옷을 거의 입고 있지 않지만, 먹을 것을 풍족히 먹고, 건강하며, 양탄자나 쿠션, 은으로 된 향료단지와 도자기로 된 가재도구를 갖춰 놓고 살고 있었다. 그 도시를 방문했던 유럽인들에게는 서양에서 보는 누더기를 걸치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소작농들의 모습과는 다른 대조적인 모습으로 와닿는 것이다. 방문객들은 또한 아유타야에서 수백년동안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종교적, 인종적 화해를 볼 수 있다.

아유타야의 전성기때는 영국 해적, 캄보디아 왕족들, 프랑스 사제들, 페르시아의 상인들, 세계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탐험가들과 상인들로 붐비고 있었다.